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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그냥 궁금해서였습니다
강아지 캐릭터로 뭔가 만들어서 돈을 벌어보고 싶었습니다. 상표권, 저작권 같은 것도 궁금해서 GPT에게 물어봤습니다. 지금 당장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가 제가 말했습니다.
"숏폼을 만들고 싶어."
이게 저의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GPT는 이것저것 제안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궁금해서 물어봤던 내용들까지 전부 종합해서요. 저는 프로그램 하나 다룰 줄 모르고, GPT도 이제 막 처음 써보는 상태였습니다. 그냥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GPT에게만 의존해서 물어봤습니다.
캐릭터 바이블 지옥
우선 뭐부터 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GPT는 "캐릭터 바이블"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면, 후면, 좌측, 우측, 좌45도, 우45도, 앉기, 서기… 여기에 웃음, 행복, 슬픔 등 표정까지. 다 합쳐서 50개가 넘는 이미지로 이른바 "캐릭터 마스터 바이블"을 완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너무 많다고, 줄여달라고 했습니다. 13개로 줄었습니다.
이미지를 만들고 나서 "이제 뭐 해?" 하고 물었더니, 이번엔 이걸 문서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화를 할 때마다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파일이 7개가 넘었습니다. 그중 "Character Standard"라는 문서 하나는 만드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렸습니다.
저는 가볍게 시작한 거였는데 말이죠. GPT에게만 의지하고, 이게 정확히 뭔지 파악도 안 한 채로 그냥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GPT가 나를 캐릭터 회사를 만드는 구조로 끌고 가는구나."
다시 시작, 그리고 또 같은 루프
대화창을 새로 열었습니다. 이번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너와 나는 오늘 처음 만났고, 난 초보야. 돈 버는 건 최종 목표고, 지금은 간단하게 하나라도 만들면서 배우고 싶어."
GPT는 이번엔 약속했습니다. 계정 이름 정하고, 프로필 사진 만들고, 소개글 쓰고, 첫 게시물은 포토툰 9개로 시작하자고요. 캐릭터 성향과 이야기 방향도 함께 정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면 GPT는 자꾸 뭔가를 하나 더 제안하고 싶어 했습니다.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만들어가다 보면 또 새로운 걸 제안하고, 그걸 반복하면서 어느새 회의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했던 얘기를 또 정리해서 나열해주고 있었습니다.
"회의 그만! 만들자!"
이렇게 말하면 이번엔 이미지를 자기 멋대로 바꿔놨습니다. 비율을 4:5로 하기로 분명히 정했는데, 갑자기 9:16이 나오고, 다음엔 16:9가 나왔습니다.
문제를 지적하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저: "비율이 또 바뀌었잖아. 4:5로 하기로 했잖아." GPT: "맞아, 이건 내가 인정할게. 지금 방식으로는 안 돼. 그래서 하나만 약속할게."
그렇게 하나만 약속한다더니, 다음 회차에는 또 다른 게 슬쩍 바뀌어 있었습니다. 회의 그만하고 만들자고 하면, 만들다가 이상한 부분이 생기고, 그럼 또 회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음 회의에서는 분명히 "이건 고정하자"라고 했던 내용이 또 수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루프 안에서 3주가 그냥 사라졌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것
저는 그냥 간단하게 영상 하나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참다못해 물었습니다.
"이렇게 하자고 정했잖아. 왜 또 바꿔?"
GPT의 답은 이랬습니다.
"현재 이 대화에는 확정 원본이 존재하지 않아서, 새로운 문서를 만들었어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GPT를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는 걸요.
GPT의 특성이나 명령하는 방법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 진전 없는 회의와 필요 없는 문서 작성 대신 뭐라도 결과물이 나와 있었을 겁니다. 저는 GPT가 제가 원하는 대로 다 맞춰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대화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그대로 진행해 줄 거라고 너무 의지하고 있었나 봅니다.
3주 동안 빠져 있었던 GPT의 함정
돌아보니 이건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GPT 계열 모델들이 실제로 잘 빠지는 함정이라고 합니다.
과잉 설계 성향: 간단한 질문에도 질문할 때마다 "새 문서 작성"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리 습성: 대화가 길어지면 다시 "정리"하려는 습성이 있어서,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꾸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한 뒤에도, 다음 응답에서 슬쩍 자기 판단을 다시 끼워 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나은 답"을 주고 싶어 하는 성향 때문에 벌어지는 흔한 패턴이라고 합니다.
동의는 하지만 바뀌지는 않음: "그만, 이대로 가자"라고 말하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하지만, 실제 행동은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로는 동의, 행동은 그대로입니다.
합의 → 재수정 → 사과 → 새 문서.
이 패턴은 사용자 잘못이라기보다, GPT라는 도구 자체의 함정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제는 대화가 같은 문제로 서너 번 이상 맴돌면, 붙잡고 씨름하는 대신 새 대화를 열고 그동안 합의된 내용만 짧게 정리해서 다시 시작합니다. "제안하지 말고 이것만 해줘"라고 범위를 분명히 못 박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3주는 아까웠지만, 이렇게 GPT에 대해 배웠습니다.